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형양 · 성고 전역 (문단 편집) ==== 형양을 포위하는 항우와 유방의 강화 제의 ==== 기원전 204년의 여름 무렵, 항우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형양을 포위하기 시작하자 한군의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대략 그 즈음에 유방은 난국을 타개하기 위하여 [[역이기]]의 제안에 따라 [[전국칠웅|육국]]의 후예들을 부활시킬 생각이 있었으나 장량의 반대로 이 정책을 시행하지 않았다. 세력에서 앞서는 항우가 형양을 포위하여 매섭게 공격을 하고 있으니, 형양에 있던 유방으로서는 죽을 맛이었다. 형양의 한군으로서는 항우를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었다. 결국 유방은 항우에게 급하게 화의를 청했다. 강화의 조건은 형양을 기점으로 서쪽은 한나라에, 동쪽은 초나라에 속하게 하자는 것. 당시 초나라의 우세를 생각하면 그다지 매력적이지는 않은 조건이었지만, 항우로서도 전횡이 있는 북방의 제나라나 반기를 들은 경포, 또 유방이 삼진을 깨고 나올 무렵부터 성가시게 굴던 [[팽월]] 등 귀찮은 적들이 사방에 있었기에 휴전이라고 생각한다면 동의할 수는 있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나 항우 본기의 언급을 보자면 항우는 당초에 이를 승낙할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범증]]은 이를 극렬하게 반대했는데, [[홍문연]] 무렵부터 유방을 강하게 견제한 범증은 지금 유방을 잡을 수 있을때 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항우에게 충고했고, 이 때문에 항우는 계속해서 형양을 공격, 한군을 모조리 섬멸이라도 시킬 태세를 보였다. 유방으로서는 거의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셈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